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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너무 길어서 못 썼는데, 왼쪽 표지 그림에서 보시다시피 '자결自決과 반식민 민족주의의 국제적 기원'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대충 여기까지만 보고서도, '아, 이 양반이 하고 싶은 얘기가 허벌나게 많은가 보구나잉'하는 느낌이 밀려온다. 아오.

1-2. 이런 식으로 글을 쓰면서도 다소 쪽팔린다. 내가 보고 싶어서 본 글도 아니고, 이 내용을 100% 온전히 이해했다고 자부하기도 영 미심쩍은 부분이 많기에 뭐라뭐라 코멘트 붙이는게 옳은가 싶다. 그래도. 수업시간에 강제로 읽은 책이라 해도. 내가 느낀 이 느낌을 망망대해의 네트워크 세상에 쬐까 풀어제끼는거, 그게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의 의무 비슷한거 아니겠나.

2-1. 전공이 한국사니까 한국사와 관련지어 말하자면,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와 '3.1운동'의 관계는 여러분들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바이다. 1918년 초에 미국 대통령 윌슨이 의회에서 연설했던 14개조 중에 각 식민지 민족들의 '자결'을 인정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에 고무되어 3.1운동이 일어났단다... 뭐 이런거.

2-2. 그리고 그게 사실은 일본을 포함한 승전국의 식민지에는 적용 안 된다는 거도 국사시간에 안 졸았던 청년이라면 다 알고 있다. 오, 그래 그래.

3. 자, 여기까지 연구가 진행되었다고 하자. 그럼 우리에게 윌슨의 테제는, 3.1운동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윌슨의 테제는 그저 배부른 식민모국의 어떤 정치지도자가 좋은 소리 한번 들어보려고 지껄인 가당찮은 소리에 불과했나. 그럼 거기에 자극받아 일어난 3.1운동은, 있지도 않은 소리에 속아 넘어간 아둔한 변방의 민족들이 저 혼자 좋아서 날뛴 한판의 쑈에 불과했던건가. 결국 그런건가. 윌슨의 테제와 반식민 민족운동은 그저 그런 오해로 점철된 일련의 막간쑈였나.

4. 그러니까 여기서 멈추면 무지하게 곤란하다, 이 말씀. 과연 그 시기에 피식민 민족들은 윌슨의 테제에 어떻게 반응하였고, 자신들의 실천에서 이 놈을 어떤 식으로 전유했는가를 밝혀내는 것이 이들 운동의 한계와 의의를 동시에 짚어낼 수 있다는 거다. 다시 말해서, 이 냥반들이 멍청하게 윌슨의 테제를 보고 따라한게 아니라 자기 나름의 조건과 상황에 맞게 이걸 변용하고, 다시 자기들 나름의 운동으로 만들었다는거다. 이처럼 다양한 현실태들을 그냥 '오해'니 '오독'이니 하는 말로 정리해버리면 곤란합니다.


5. 위 사진은 중국의 5.4운동 사진이다. 잘 보면 가운데에 '대동세계大同世界'라고 쓰여진 피켓이 있다. 저 말은 '국제연맹the league of nation'의 당시 중국어 번역이다. 뭔가 어감이 확 달라진다. 아니 이건 대체 뭥미;;; 중국에 영어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저런 상황이 생겼을까.

  이 때 식민지 근대성은 서구 근대성, 아메리카 근대성, 사회주의 근대성처럼 근대성의 한 모듈(module)로 이해된다. 이러한 모듈들은 중심부에 의한 방사나 확산의 결가가 아니라 접촉의 결과이며, 그 접촉이 낳은 충격과 잡종성(hybridity) 등이야 말로 실정성으로서의 한국 근대성의 양상이다. (중략) 이 때 번역은 단순히 기원언어(서구어 혹은 일본어)에 목표언어(한국어)를 1대1로 대응시키는 작업이 아니라, 하나의 개념을 둘러싼 담론적 실천 및 이 실천의 정치와 결합된다. (강내희, 「한국의 식민지 근대성과 충격의 번역」, 『문화과학』31호, 2002.)

  In the end, however, the reception of Wilson's rhetoric among nationalists in the colonial world was not defined by the intentions of its author but by the perceptions, goals, and contexts of its often-unintended audiences. 그러나 결국 윌슨의 레토릭에 대한 식민지 민족주의자들의 반응은 화자의 의도가 아니라, 의도치 않은 청자들의 의식과 목적, 그들이 처한 맥락에 따라 결정되었다. (pp. 33~34.)

6. 저자가 계속 천착하는 문제는 바로 이런 쪽이다. 어차피 윌슨의 테제에서 윌슨이 백인우월주의자였다느니, 그가 구성한  전후 세계질서가 어땠는지에 대한 사실 등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해석의 주체는 그가 아니니까. 피억압민족들이 어떻게 중심부의 테제에 반응해 그것을 재구성하고, 다시 그것을 중심부에 되먹이는가 하는가가 이 책의 중심 주제라 보시면 되겠다.

7. 아, 마지막 덧붙임 말. 윌슨의 14개조에는 '자결self-determination'이라는 말이 없다. ㅇㅇ. 단어만 없는게 아니라 그런 개념 자체가 아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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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4 12:59 2008/05/04 12:59
공제욱, 정근식 외, 문화과학사, 2006.
1. '근대'의 절대성에 대한 문제제기라든지, 수탈론이나 근대화론이나 그 '근대'를 우리가 성취해야 할 역사적 선善으로 상정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라는 식의 이야기는 이제 지겨우니 하지 말자. 역사학의 변방에서 잡스런 지식나부랭이 좀 끄적인 사람 치고 이 정도 모르는 사람 없겠지.

2-1. 문제는 그것이다. 이 책을 쓰신 분들 조차도 '식민지 근대성'이란 무엇인지 통일된 인식을 안 갖고 계신 듯 하다는 것. '식민지 근대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 각각의 연구들은 '식민지 근대성'이라는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거 제대로 설명할만한 사람 한국에 얼마 안 될걸. (많으면 1000명이나 되려나.)

2-2. 아니 그렇다고 나는 잘 알고 있다... 이런 건 아니고. 이제 석사 2학기째인 놈이 알면 뭘 알겠냐.

3. 그러니까 그런거 아니겠나. 지금까지 권력과 일상은 일방적인 관계로 상정되어 왔는데 실상을 따져보니 그렇지 않더라는 것. 다시 말해 권력주체가 권력을 행사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그 '공간'에서 자기 할 얘기 하고, 자기 하고 싶은 일 하는 피치자들의 모습들이 중요하다는거다. 왜냐고? 이 말은 곧 권력이 그들과의 관계를 통해 그 행사되는 양상이 재구성된다는 얘기고 바로 이 지점이 빈틈없어 보이는 권력의 '틈'이라는거 아닌가.

4. 그리고 '근대'(혹은 '근대권력')과 접촉하는 사람들은 이걸 자기 나름대로 '번역'을 하는데, 이것이 어떻게 전유되는가가 그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보여주는 모양일 수 있다는 거. 예컨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오독誤讀'된 것이나, 모던보이와 신여성들의 어색한 서구식 생활방식이 서구문화를 '왜곡'시켜 수입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들. 그걸 그렇게 '오독'와 '왜곡'으로 몰아가면 안 된다는거다. 사실 '번역'이라는건 1:1로 대응시켜 변환시키는 행위가 아니라, 그 개념(혹은 문화)들을 둘러싼 실천과 연관된 행위라는거죠. 문화라는거, 일방적으로 전달되는게 아니라 서로 교잡하고 횡단하는 잡종성을 가진 거잖아. (이거 벌써 쌍팔년도 더 전에 나온 얘긴데 한국사에서는 이제서야 이 얘기 붙들고 씨름하고 있네.)

5. 그나마 최근에 나온 책이라서 그런지 가장 정치하고 단단한 문제의식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 역시 논문모음집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지라 문제의식의 일관성은 좀 부족하지 않나 싶다. 한국사학계에서 '식민지 근대성론'에게 펼쳐진 무한한 가능성과 함께, 그것이 갈 길 또한 허벌나게 멀다는 점도 함께 노출하고 있네. 아, 결국 발바닥 땀나게 공부해야 된다는 거냐. 이건 뭐... 이 따위 결론이 나오고 말아서 나도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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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12 20:20 2008/04/12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