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얼추 빡빡이 중삐리 정도 즈음으로 기억하는데, 어디 친척집에 갔다가 어른들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나 나누고 있길래 또래 친구도 없고 해서 책꽂이에 꽂혀있던 아무 소설이나 집어서 뒤적뒤적하려고 골랐던 책이 (운이 좋았던건지 나빴던건지) 이 '죽은 시인의 사회'. 진심으로 아무 생각없이 골라들었는데 앉은 자리에서 절반 정도를 후다닥 읽어버렸는데 그 때 꽤나 충격을 많이 받았었다. 적당하게 감정이입 조금 넣어주고 머리 속으로 상상력 발동해주면서 읽어가니 가히 쑈크가 "이거 완전 와땀다" 수준이었더라는거. 그렇게 보면 이 영화는 지난번에 썼던 '전쟁의 사상자들'에 이어 '10대의 충격' 두번째 시리즈 정도랄까.
2. 사실 영화로도 나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소설과 영화의 차이가 (실망스럽게) 크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안 보고 있었던 것을 고민 끝애 찾아보게 되었다. 소설로 읽었을 때만큼의 충격도 이제는 없고, 내용도 조금 다른 것 같긴 하지만 그 나름의 재미와 감동이 있는 것도 사실.
1. 그는 자신의 기억을 신뢰할 수 없기에 끊임없이 기록한다. 물론 거짓은 기록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를 기록한다.
2. 반전이 어쩌구저쩌구 말들은 많지만 내가 보기엔 그다지 반전이랄 것 까지도 없는게, 영화 내내 기록에 의존한 기억이란 결코 완전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거. 그러면 결국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이 어디선가 분명 뒤틀릴 것은 분명하다. 그 점을 의식한다면 사실 그 반전이란 것도 어쩌면 애초부터 예측 가능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3. '기록'들을 모두 모아서 재구성한다고 해서 '과거'가 온전한 모습으로 완성되지는 않는다. 원인은 다양할 수 있다. 애초에 우리가 어떤 사건을 인지하는 능력 자체가 한정된 탓일 수도 있고, '기억' 자체가 왜곡된 것일 수도 있으며, '기록'이 그 '기억'을 모두 다 포괄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4-1. 어차피 역사라는 학문도 결국은 '기억' 혹은 '기록'과의 관계 속에서 성립하는 학문이다. E.H. Carr는 역사를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지만 여기서 '과거'가 '과거에 있었던 어떤 사실 그 자체'라고 생각하시면 경기도 오산.
4-2. 정확히는 '과거의 흔적'이라고 해야 옳다.
5. 과거의 완전한 재구성이란 불가능한 일임을 전제하는 것. 역사학은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출발한다.
0.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어둠의 경로를 통해 영화를 구해다 보고 있는데 화질 좋게 뻥뻥 터지는 요즘 영화도 좋지만 어쩐지 예전에 재밌게 봤던 영화들을 다시 구해보자...는 마음이 일어 보게 된 영화 중 하나.
1-1. 분명 담당과목은 '국민윤리'였지만 학생들이 '국민윤리'를 습득하는 것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정확히 말해서 '국민윤리'를 거부하기를 원했던) 내 고2때 담임선생님은 밀려버린 진도를 단 한장의 핸드아웃으로 말끔하게 정리해내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터라 남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영화들을 많이 보여주시곤 했다. (그 당시 감독과 평론가들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당대 최고의 뽕빨 영화로 자리매김하고 말았던 '감각의 제국'을 보았던 것도 '국민윤리' 시간이었다.)
1-2. 나는 그런 선생님의 의식화 전략에 꽤나 충실하게 반응했던 녀석이었던지라 한창 호기심 왕성하고 감수성 풍부했던 10대 후반에 본 이 영화는 굉장히 강한 이미지로 남았다는 거.
2.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의 평균연령은 19살이었다던가 20살이었다던가. 스스로를 통제할만한 충분한 자제력을 미처 기르지 못한 젊은이들이 '조국'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하는 살육의 현장에서 결국 광기의 화신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보는 이를 진정으로 섬뜩하게 만드는 것은 이러한 광기의 사건이 엄연히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라는 점이다. 영화를 보며 덜덜 떨었던 나도 같은 현장에 놓이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 미저브(숀 펜)와 같은 주동자가 될 수도 있고 디아즈(존 레귀자모) 같은 수동적 호응자가 될 수도 있지만, 에릭슨(마이클 J. 폭스) 같은 저항자가 되긴 힘들지 않을까.
3-1. 아마도 마이클 만의 책에서 읽었던 것 같다. 정확한 문구는 기억이 안 나는데 아마도 이런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들 중 누구도 학살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동시에 평범한 민간인들이 학살의 실행자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책임 소재를 흐리거나 위정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것이 아니라, 또다시 그러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그리고 그러한 상황이 되어도 우리가 학살의 실행자가 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뭐 대충 이런 내용.
3-2. 나름 50년대를 연구해보겠답시고 그 시대 관련 서적들을 탐독하는 중이다. 50년대 최대의 화두는 역시 전쟁이다. 심성여린 한국전쟁 연구자들이 가장 고통스러움을 호소하는 부분은 '악의 평범성'이 광범위하게 발견된다는 사실. 전쟁의 가운데 벌어졌던 참혹한 학살의 묘사를 읽노라면 그 자체도 무섭지만 그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얼마 전까지 같은 동네에서 농사짓고 막걸리 나눠마시던 동네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 나를 더 절망케 한다.
4. 이런 따위의 영화는 학살이 존재했던 거대한 조건을 조망하지 못하고 학살의 원인을 개개인의 인격적 결함으로만 돌리기에 결국 한계로 남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진짜 큰 문제는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게 요즘 제 생각입니다요.
일드속 군사문화가 논문주제인가보군요^^ 저는 삼바의 정치학이염.
그래서 다시 Battlestar Gallactica 봐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