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점에 가서 책 안 사고 앨범을 사는 짓만큼 본말이 전도된 짓거리도 드문데 그렇게 고른 앨범이 이것이라는 점도 사실은 좀 놀라운 것. 쉽고 흔한 말로 "대중음악 따위..."라고 말하고 다녔던 시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내가 음악을 알면 또 얼마나 알겠나 싶어서 그냥 들어보고 귀에 잘 맞으면 그냥 듣는게 현재 음악취향. 그래서 이걸 골랐다.
2. 사실 여자보컬에 남자세션 뭐 이런 구성은 지금 남한에서는 발길에 채일 정도로 흔한 컨셉이지만 나름대로는 대중음악(사실 대중음악과 안대중음악의 경계도 흐릿하지만)으로 분류되는 팀 치고는 꽤나 존중할만한 팀 아닌가 생각은 한다만은...
3. 사실 이걸 고른 이유는 단지 흔히 보기 힘들다는 이유 때문이었는데, 이 사람들의 앨범 판매 전략이란게 쓸데없이 CD 찍어서 원가낭비하는 것보다는 '디지털 싱글'이라는, 앨범 구매자 입장에서는 다소 짜증나지만 판매자 입장에서는 대단히 효과적인 전략. 따라서 지금 이것도 품절되면 다시 안 채워질거야... 뭐 이런 걱정이 잠깐 들었다는거.
4. special edition이라는 뜻은 특별하는게 아니라 원래 3집에 그 후에 따로 나왔던 싱글음반을 합쳐서 다시 내놓은 것. 세상에. 전에 나왔던 음반과 싱글을 합쳐서 새로 앨범 뽑는 건 또 처음 봤네.
맥아더(Douglas MacArthur)와 워싱턴이 북한에게 사실상 '무조건 항복(unconditional surrender)'을 재차 요구하고, 무엇보다 중국의 참전에도 불구하고 적의 절멸을 추구할 때 그것은 이미 제한전쟁일 수 없었다. 미국에게는 기본적으로 제한전쟁의 개념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의 제한전쟁은 능동적으로 선택된 전쟁전략으로서가 아니라, 중국의 압박에 의해 불가피하게 강요된 피동적 전쟁전략이었다. (p. 25.)
2.
최근 우리는 한국전쟁의 시작을 포함해 미국의 북진 및 한만국경 진격이 전부 오인(misperception)의 산물이었다는 전통적인 국제정치적 해석의 뚜렷한 재등장을 목도한다. 이에 따를 때 한국전쟁은 끝없는 오판의 연속이었다. (중략) 그것은 자료들이 보여주듯 오인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일부 그것을 포함해, 기실은 일관된 어떤 전략과 정책, 그리고 그것들이 체제이념 및 세계관의 산물이었다. (p. 27.)
3.
6.25는 통일시도의 계기인 동시에 사회의 모든 수준에 폭력의 만연을 가져온 계기였다. 개인 수준의 자기생존의 추구와 타인살해의 시도는 사회수준에서는 절멸주의로 연결된다. 폭력의 증가는 가공할 학살로 나타났고, 사태가 역전되었을 때는 다시 끔찍한 보복이 기다리고 있었다. 곳곳에서 피의 보복이 진행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폭력의 악순환"이었다. (p. 262.)
4.
겹겹이 떠오르는 장면들로 인해 쏟아지는 눈물을 참고 어떻게든 이성적으로 정신을 추스르고 차분하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서술해야 하는 연구자의 위치는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이다. 이 비극의 현장으로부터 차라리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다. (중략) 슬픔은 자주 이성의, 그리고 지혜의 단초가 된다. 《성서 시편》의 구절처럼 전쟁과 전쟁 연구의 양자 모두에 있어, 긴 역사발전의 지평에서 우리는 미래를 위해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시편 126:5~126:6) 심정으로 광풍의 시대의 아픔과 죄악을 들추어내고, 비판하고, 규명해야 한다. (p. 385.)
5.
전쟁 이전에 남과 북의 3년간의 초기 국가형성과 국민형성의 과정은 각각 좌파와 우파,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배제의 과정과 중첩되었다는 점에서 북한에서의 통합 역시, 우리가 이미 살펴본 남한에서처럼, 부정적 통합(negative integration)의 개념에 정확하게 접근한다. 그것은 각각의 체제와 이념이 지닌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장점에 대한 호소와 확산을 통한 국민형성, 국민통합(national integration)의 과정이기도 하였지만 다른 한편 상대체제와 이념에 대한 부정적이고 배척적인 선전과 각인을 통한 국민형성, 국민통합의 과정이기도 하였다. (pp. 612~613.)
6.
역사적으로 파시즘 이데올로기도 그 대중적 기반을 갖는다. 즉 역사적 경험에서 추출된 이념은 정치권력의 구축에 선행하며 정치적 행동의 초석을 놓아준다. 그렇다면 남한의 반공주의는 반드시 위로부터 주어진 측면만 존재했었던 것인가 우리는 묻게 된다. (p. 775.)
7. 반도 채 못 읽었던 것을 오늘 오전부터 손에서 놓지 못하고 이 시간까지 계속 읽었다. 뭔가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 아닐까 싶다.
나는 읽을 줄도 모르면서도 하도 제 신세가 초라하여, 혹 영문 신문이나 보면 인물이 좀 돋우설까 하는 可憐한 생각으로 십전 은화를 주고 중국 外字報치고 가장 세력 잇다는 상해 今朝 발행 『China Press』 1부를 사 광고 그림만 뒤적뒤적하다가, 외투 호주머니에 반쯤 밖으로 나오게 집어넣어 몸치레를 삼았나이다.
1. 자주 이야기한 것처럼 나는 의도한 것이든 우연이든 출판 혹은 발매와 발맞춰 컨텐츠를 구매하는 일이 매우 적은데, 지난 11월에 나온 책을 벌써 후루룩 다 읽어버린 내 모습을 보자니, 이건 역시 오덕 본능.
2-1. 좀 짜증나는건 이런 책에 늘상 붙게 마련인 자화자찬 및 이런저런 구구한 찬사들. 일단 저 부제부터가 마음에 안 드는데 '음악으로 굴곡진 삶을 관통'했다니... 아니 뭐 틀린 얘기는 아닌데, 이게 그렇다고 '이것이 인생이다'나 '인간극장' 뭐 이런거 아니잖아?
2-2. 본인도 출간에 맞춰,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싶어 썼다... 뭐 이렇게 인터뷰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에이... 횽아도 얼추 50 넘어서 술이랑 약물 끊으셨으면서... 게다가 마누라가 나랑 나이가 몇 살 차이 나더라... 물론 공개적으로 하기 힘든 얘기들을 많이 하신 것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긴 합니다요.
3. 물론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여성편력이라든지, 무대 뒤에서의 아티스트들의 약물복용이라든지 하는 내용들을 알게 된건 생각 외의 수확(이 아닐지도!). 그러고보면 약물했던 얘기를 자서전에 써놓은거 보면 미국이란 나라가 참 신기하기 부럽기도(?) 하다만은...
4. 우야던동 최근에 이렇게 아무런 부담감없이 편한 마음으로 독서해본적이 없어서 그 내용에 상관없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웁게 책을 읽었답니다.
1. 개뿔도 모르기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지금보다 더 모르던 시절에 읽었던 책을 지금 시점에 다시 읽으면 그 때는 포착하지 못했던 걸 잡아내거나 잘못 독해했던 부분들을 교정하는 재미(랄까 씁쓸함이랄까)가 꽤나 쏠쏠한 편이다. 이 책을 처음 만난건 복학 후의 전공수업에서였는데, 아마 07년 1학기였던가 그랬을 것이다. 만만치 않은 두께에 난해한 직역투의 문장 등으로 인해 상당한 난이도로 다가왔던 책이었다. 어찌어찌 내가 필요한 극히 일부분만 발췌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2. 내용은 크게 세 부분 정도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다. 첫 다섯 장chapter은 내용을 풀어나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개념을 정리하고 있고, 그 이후 세계 각처에서 일어났던 포스트식민주의적 실천의 역사적 궤적 정리, 마지막으로 푸코와 데리다를 분석하고 있다. 물론 워낙 다양한 분야와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목차만 보고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읽어도 괜찮다.
3-1. 특징적인 점이라면 포스트식민주의를 반식민주의라는 맥락 속에서 일어난 마르크스주의의 지역적 변용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 이렇게 되면 당연히 마르크스주의 그 자체보다는 그것이 각자 발화되는 지역적 맥락이 중요해지는데, 그에 따라 등장하는 것이 바로 '트리컨티넨탈리즘'이라는 용어. '남반구'나 '제3세계'라는 식의 2분법적 혹은 네거티브한 명명이 아니라 각 식민지들의 고유한 경험을 되살려보자... 뭐 이런 문제의식인데 꽤나 신선하고 타당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3-2. 다만 문제는 트리컨티넨탈리즘을 마르크스주의의 지역적 변용으로 설명하려다 보니 뭔가 그 외연과 내포가 다소 아리까리해진다는 거. 책에서 아프리카 사회주의의 대표주자인 것처럼 설명하고 계신 은크루마나 니에레레 같은 애들은 좀 냉정하게 보면 독재자의 이미지도 강하거든. 그런 식으로 하면 김일성 수령님도 동아시아 트리컨티넨탈리즘의 대표주자냐, 응?
3-3. 이 부분은 대부분의 포스트식민주의가 식민주의의 정신적, 정치적 유산을 해체하기 위한 '탈식민주의'로 정의된다는 점과 결정적인 차이를 보인다는 거. 그 차이가 바로 위에서 말했던 외연과 내포의 아리까리함으로 나타나는데 요게 은근 논쟁적인 부분. 오히려 그래서 이 책이 한국의 포스트식민주의 연구에서 많이 인용되기도 한다만은...
4. 아, 하나 빼먹고 넘어갔는데 이 양반은 식민주의랑 제국주의를 구분해서 사용한다. 일본이라는 하나의 제국에 속했던 가장 주요하고 (한동안은 유일했던) 식민지였던 한국에서는 대개 무시되는 차이인데, 아마도 다양한 식민지를 거느렸던 제국 메트로폴리스의 심장부에 있는 저자와 식민지 경험을 가진 국가에 사는 우리의 위치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자세한 내용은 설명하기 귀찮으니 책 읽어보시고...
5-1. 또 하나 재미있는 부분이 후반부의 푸코의 담론 개념을 분석한 것. 릴라 간디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흔히들 에드워드 사이드의 이야기와 푸코의 담론 개념을 동일시하는데 로버트 영은 여기에 '아니거든요' 한다.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 말하는 담론이 문제가 되는건 동양을 '재현'하는데 실패했다는 사실에 있는데, 저자에 따르면 푸코의 담론 개념은 이런 식의 '재현'의 문제, 즉 물질세계와 언어가 괴리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게 아니라는거. 오히려 푸코가 주목하는 것은 담론이란 물질세계를 규정짓고 인식하는 상호관계의 산물인 동시에,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는 방식 자체를 규정짓기도 한다는 것.
5-2. 따라서 여기서 더 나아가면 담론은 어떤 고정적이고 불변적인 인식(혹은 지식)체계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은 그렇지 않지?) 담론을 구성하는 각각의 언표들은 그것이 존재하는 맥락이나 기능, 상황 등에 영향을 받으면서 가변적으로 '말해지는' 것들이다. 따라서 언표는 언어적인 형태를 가지고는 있지만 엄밀히 말해서 언어와 세계 사이의 상호작용의 산물이라는 것. 그래서 그것들의 총합인 담론 역시 이질적이고 가변적이며 유동적이다.
5-3. 이렇게 되면 담론은 고정적인 것도, 극복불가능한 것도 아니게 된다. 그러한 가변성은 담론이 권력의 도구이자 결과인 동시에 그것을 균열낼 수 있는 시발점이 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한쪽에 권력의 담론이 있고 맞은편에 그것과 정면으로 대립하는 또 다른 담론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담론은 세력 관계의 영역에서 작용하는 전술적 요소 또는 세력권이고, 따라서 같은 전략 내부에 서로 다르고 심지어 모순되기까지 하는 담론들이 있을 수 잇으며,(중략, 여기까지는 푸코 인용문) 푸꼬에게 권력은 의도적인 것도 아니고 완전하게 실현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권력은 "다양하고 유동적인 세력 관계의 영역, 여기서는 전반적이지만 결코 전적으로 안정된 것은 아닌 효과가 산출되는 영역"이다. (p. 716)
5-4. 물론 이와 같은 분석이 얼마나 타당한지는 나도 모른다. 그래도 나름 참고할만한 해석은 아닌가 싶다. 좀 더 공부를 해봐야지. 여기서 psychede님하가 뭔가 "캐병진들, 그건 이거야"하면서 특유의 냉소적 조언을 날려주지 않을까 기대도 해보지만은... 우야던동 이 시간까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나름 꽤나 재미있게 읽었심다.
뭐야 누가 에드워드 사이드가 담론이 동양을 재현하는데 실패했다고 그래 사이드형 무시하는거?? 이 사람이야 응? 이사람이 그랬어? 응? 사이드형 원래 촘 어설프지만 그러케 기찻길옆 오두막집 모기장처럼 헐렁헐렁하진 않거든? 사이드형아 죽었다고 너무 까부는데. 글고 머 나름 참고할만한 해석이긴 하지만 누구나 나불거릴 수 있는 얘기인데다 문제는 누구나 모른다는거.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담론이 동양이라는 실재와 괴리되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실제의 동양을 대면했을 때 문제가 생긴다는...) 또한 그 담론이 동양에 대한 지식을 생성하는 유일한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뭐 이런 소린데, 저자도 제대로 파악을 못한듯 여기저기서 맥락에 따라 묘하게 어긋나는 말들도 많삽네다.
0. 이런 따위의 글을 쓸라치면 1월 1일이 뭐 대단한 날이라고 새삼스레 이런 글을 쓰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핑계라도 있어야 지금 내 꼬라지를 되돌아보는 기회가 생기지 않겠나 싶다.
1. 2008년이 끝난다. 다른 사람 이야기 할 것 없이 내게 있어서 2008년은 많은 일이 있다가도 없었던 한해였다. 나름 꽤나 성실했던 상반기와 나태함의 절정을 달렸던 하반기가 교차했던 2007년을 되돌아보며 올 한해는 혀깨물 각오로 공부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꽤나 많은 책과 꽤나 많은 글들을 읽었던 것 같다. 그래, 다른 것 다 제쳐두고 책을 많이 읽었던 것은 가장 큰 성과 중 하나. 공부하는 놈한테 역시 남는 건 술도 아니고 담배도 아니고 책. 여전히 읽어야하고 읽고 싶은 책은 산더미처럼 쌓여있지만 그것도 위시리스트 정리하듯 조금씩 정복하다보면 바닥이 보이겠지. 나름 인생 계획이랍시고 세웠던 퇴비 증산 3개년 계획 2년차는 닥치고 책이나 보자...는 각오였으니.
2. 어디에도 썼던 것 같은데 나는 내가 쌓아온 어떤 공부나 능력을 숫자나 증명서로 남기는 행위에 매우 인색하다. 있던 주민등록증도 찢어버리고 싶은게 내 마음인데 새로운걸 만들 마음이 생길리가 없지. 토익도 졸업인증 때문에 딱 한번 봤을 뿐이고 대충대충 따놨던 운전면허증은 여전히 장농면허에... 그래서 올해는 그런 것들을 명시적인 어떤 것으로 정리해볼까 한다. 시험도 보고 자격증도 따고. 그런 것 따위로 내 능력을 수치화시키고 싶진 않았지만 그 따위 것 없다고 무시받는 것도 이제 그만해야지. 대체 얼마나 대단하길래 다들 그렇게 목을 매다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까짓거.
3. 굳이 2008년에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닌데, 유독 사람관계는 내 뜻대로 잘 안 된다. 특히 나처럼 '자기기만적 사회성'으로 무장한 사람이 이런 문제에 취약한 법인데, 아마도 이 문제는 평생 가져갈 문제가 아닌가 싶긴 하다. 그 전에는 좀 더 '안 자기기만적인 사회성'을 가지는 게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몇 달 전부터는 굳이 '자기기만적으로' 사회성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나...싶어서 아예 사회성이 부족했던 내 모습 그대로 돌아가는게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논문도 좀 더 빨리 나올 것 같고. ㅋㅋㅋ
4. 그래 내년에는 모두들 씨익-하고 웃자. 그렇게 웃으면서 춤출 수 있도록 하자 싶다.
Matt Harding이라는 애가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막춤추며 찍은 동영상. 유튜브에서 얘 이름으로 검색하면 이 영상이 점차 완성되어가는 중간 과정물들도 볼 수 있다. 조회수가 몇천만이라더라... 사람들 나름대로 '사랑'이니 '평화'니 갖가지 해석들을 덧붙였지만 정작 본인은 '걍 좋아서 한건데염...' 했다더라.
1. 언제부터인지 잘 기억은 안 나는데, 꽤나 오래전부터 읽고 싶다고 마음을 먹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읽지 못하던 것을 (지인들에게 생일선물로 사달라고 졸랐음에도 불구하고!!!) 과학생회실에 굴러다니던 것을 거의 훔쳐오다시피 해서 들고와 후루룩 다 읽어버렸다. 그럴 일은 없겠으나, 혹시 이 책의 주인이 이 글을 보고 있다면 과학생회실에 되갖다놓을테니 가져가시길... (6장에만 형광펜으로 줄을 그어놓은 것으로 보아 6장만 읽으신 듯...)
2. 확실히 대중을 위해 쓰인 책이기 때문에, 나같은 역사전공자들 사이에서는 매우 당연하게 통용되는 사실들(사진, 영화, 만화 등이 묘사하는 역사적 사실들이 결코 객관적인 진실이 아니며 그 속에는 이미 작자의 주관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에 대해서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고 있고, 따라서 그에 대한 내 글도 굳이 그러한 내용을 요약할 필요는 없겠지.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학 전공자들이 이 책을 주목해야 할 이유가 퇴색되는 것은 아닌데, 그 이유는 바로 이 책이 '미디어'에 주목하고 있다는 단 한 가지 사실. 사실 남한 역사학계에서 미디어에 대한 관심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데 실제로 압도다수의 대중이 미디어를 통해 역사적 지식을 습득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가히 '역사에 대한 학자들의 책임방기'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삽네다. 물론 남한 학계의 규모가 여전히 영세한 수준을 못 벗어나기 때문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지금부터라도 젊은 연구자님하들이 미디어 쪽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
지금까지 역사가는 (중략) 사진 영상을 단지 텍스트에 첨가된 부속물이나 서술의 진실을 방증하고 정서에 호소하는 힘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과거 사진과 마주치는 일은 그 이상으로 강력한 힘을 지닌다. 문자로부터 뒷걸음질치고 있는 이 시대에 사진 영상을 과거와 관련을 맺는 계기로서 점점 더 중요해질지도 모른다. (pp. 162~163.)
4.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뉴스, 출근하면서 버스 라디오, 길바닥에 포스터, 퇴근하고 나서 집에서 배깔고 엎드려 보는 만화책, 휴일이면 보러 가는 영화까지... 너는 이미 미디어의 포로.
히틀러가 『나의 투쟁』에서 말했듯이 "대중의 기억 속에 생각이 스며들게 하려면 결국 끊임없는 반복만이 최종적인 성과를 올릴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 흑과 백으로 확실한 대비를 묘사하는 것이다." (p. 269.)
비록 노골적인 조작이 이루어지는 상황이 아닐 때조차 미디어가 사람들의 과거 이해에 미치는 영향을 좋은 나쁘든 티가 안 나도 섬세하고 뿌리가 깊은 법이다. (p. 321.)
5-1. 뭐 어쨌든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인하야 바야흐로 너도나도 개나소나 컨텐츠 제작과 기록에 참여하는 시대가 열렸다. 싸이에 블로그에 또 뭐시기들에...
신문이나 잡지, 전시회, 서적 등에서 사진이 대량 소비되는 현상은 어떤 의미에서 가족 앨범의 발달을 반영한다. 처음으로 발간된 사진집의 내용이 초기의 가족 앨범과 마찬가지로 공시적이었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떤 나라, 어떤 제국, 또는 특정한 극적 사건에 대한 전체상을 꾸며내려고 다양한 사람과 각지각처의 동시대적인 영상을 모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전체상이야말로 한없이 복잡하고 공간적으로 분산된 리얼리티를 다루기 쉽고 눈에 보이는 형식으로 응축해내는 특별한 힘을 지니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사진집이 담보하는 분명한 신빙성 덕택이었다. 사진집을 들추면서 독자들은 자기가 속한 사회를 '보고 있다'는 감각을―비록 그것이 현실을 살아가는 실제적인 경험의 틀을 훌쩍 뛰어넘는 것임에도―느낄 수 있었다. (중략) 또한 대량소비와 매스미디어의 발달이 전체전('total war'의 번역인 듯 한데, '총력전'이 좀 더 익숙한 번역인 듯―Dog君)의 체험과 어우러져 공통의 기억을 산출했고, 그것이 연대기적으로 편집된 국민의 '집단 가족 앨범'을 출간하는 기반이 되었다. (pp. 140~143.)
대개 사람들은 유저들이 만드는 컨텐츠에 대한 환상이 있는 것도 같은데, 가만 생각들 해보시라. 결국 모두 '익숙한 풍경'들 아닌가염.